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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선아, 선배라고 약 올리지 말고 후배라고 부담 갖지 마 선배라고?○○씨라고 불러야지' 바뀌는 호칭 문화 - 수평적 관계

한국일보

 

이 부분은 00씨가 정리해요. 몇몇 학생들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스터디 그룹을 짓는 동안 한 여학생의 말 한마디에 나이가 가장 들어 보이는 남학생이 눈을 크게 떴다. 00씨? 내년에 나는 서른인데 나이가 될까? 스물한 살이에요. 왜? 얼마 전에 방영된 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일부러 웃기려고 과장한 것이 아니라 요즘 대학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선후배를 묻는 호칭이 사라지고 있다.같은 대학 선후배라도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대학뿐 아니라 각종 동아리, 모임 등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학수업을 위한 조별 모임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성균관대 사회과학부 박모(24)씨는 "영상 관련 수업을 위한 조별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른다"고 말했다.그는 "2014년 입학 당시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난해부터 이름을 부르는 일이 늘었다며 선후배 간 직접적인 교류가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런 호칭 변화는 모임이 끝나면 해체라는 목적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라며 "공적 관계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는 무언의 약속"이라고 해석했다.

복수전공을 하거나 교환학생을 하거나 휴학하고 복학하면 여러 연령대와 대학번호가 섞여 서로 교류가 멀어진다.이 때문에 예전처럼 학번이나 나이를 고려해 호칭을 부르기보다는 완전히 사무적인 관계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박씨는 "요즘 대학가는 서로 교류를 이끄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호칭부터 이것저것 따질 게 아니라 꼬박꼬박 누구누구라고 부르는 게 서로 편하다"고 전했다.

취업준비생 정모 씨(29)가 참여하는 취업준비생 모임에서는 형, 누나, 형 등 나이에 따른 호칭 대신 서로 이름을 부른다. A 씨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면 편하다며 나이와 학번을 막론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원활한 과제 수행을 위해 일부러 호칭을 3으로 통일하고 상호간에 철저히 존댓말을 쓰는 모임도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이창샘(25) 씨는 호칭을 삼으로 통일하면 구성원 간에 수평적 관계가 형성돼 원활한 과제 수행에 도움이 된다며 서로 편해지면 발생하는 친목을 도모하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디지털 세대의 특징으로 보고 있다.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이용해 자란 1990~2000년대생들은 모든 정보와 교류를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통해 하고 나이와 학번 등 서열화된 인적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는 분위기다.SNS로 맺은 관계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각자의 개인정보 노출을 피하고 보호하는 분위기다.

곽 교수는 "지금 세대는 나이와 학번으로 구분하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려 한다"며 "지나친 상대 비교와 경쟁에 노출돼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해 본인의 정보를 최대한 노출하지 않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서구식 기업문화도 호칭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은 사내에서 직함 대신 사장이나 신입사원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이런 기업에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한 학생들이 대학 조별 모임에 이런 특징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호칭 변화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곽 교수는 후배들은 선배가 괴롭히지 말라는 뜻을 포함하고, 선배 입장에서는 후배라고 해서 부담을 갖지 말라는 뜻이 호칭 변화에 섞여 있다며 수직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줄일 수 있어 좋은 변화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반면 회사원 김희정씨(26)는 서로 부르면 인간적 친밀감이 생기기 어렵다며 그만큼 매정하고 피곤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